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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사례

[수행사례] 무상 거주를 약속해놓고 이제 와서 돈 내라는 집주인 │ 부동산 사용대차

by 11년차 변호사 2025. 4. 2.

형제자매나 친척 등 가까운 사이에서 돈을 받지 않고 집을 빌려주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유는 다양하다. 
  - 단순히 우애가 깊어서, 
  - 또는 비워두느니 관리를 맡기는 차원에서일 수도 있고, 
  - 보다 구체적으로는 막냇동생이 큰형 집에서 부모님을 모시며 지내기로 합의하거나, 
  - A와 B가 주택 매수대금을 나누어 냈지만 명의는 A 앞으로 하되 실제로는 B가 거주하기로 합의한 케이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모두 실제 사건에서 경험해보았던 사연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사이가 틀어지거나, 특히 부모세대가 사망하고 그 자녀세대로 상속이 이루어지고 나면 위와 같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고 분쟁도 곧잘 발생하게 된다.

 

이 경우 부동산 소유자는 보통 민사소송을 통해 [해당 부동산의 명도 + (최대 과거 10년까지의 기간 동안) 무단점유로 인한 부당이득 반환]을 청구해 오는데, 부동산 명도야 그렇다 치더라도 상호 동의하에 거주했던 기간의 차임 상당액을 요구하는 것은 점유자 입장에서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일단 소가 제기된 이상, 부당이득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서는 위와 같이 ‘돈은 받지 않을 테니 그냥 살아도 좋다’는 허락이나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피고(=점유자)가 증명해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가족이나 친척 간의 호의에서 비롯된 약속을 서면으로 남겨두는 사례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처음 점유가 시작된 경위를 입증하기 곤란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선 “돈은 받지 않을 테니 내 집에서 지내라”는 등으로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표현은, 소유자와 점유자 사이에 “사용대차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법률적인 표현으로 바꾸어볼 수 있다.

사용대차란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무상으로 사용, 수익하게 하기 위하여 목적물을 인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은 이를 사용, 수익한 후 그 물건을 반환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을 의미한다(민법 제609조). 보증금과 월세를 받고, 즉 유상으로 집을 빌려주는 임대차에 대비되는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피고는 부당이득금 지급 의무를 면하기 위해 ‘사용대차 계약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데, 자료가 남아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만일 관련 증거가 남아있지 않은 때에는 제반 사정을 논리적으로 구성하여 사용대차 계약의 묵시적 성립을 주장해야 한다.

 


얼마 전 수행했던 사건 중, 묵시적 사용대차 약정의 체결 여부가 쟁점 중 한 가지로 부각되었던 케이스를 소개한다.

(사실관계가 복잡하여 일부 각색・편집함)

약 25년 전, A는 자신의 아들 B 명의로 되어 있는 집을 동생인 의뢰인에게 내주면서 ‘네가 원하는 만큼 이 집에서 살아도 좋다’는 약속을 했다. 해당 집을 처음 매수할 때 의뢰인 또한 적지 않은 금원을 나누어 부담하였음에도, 누나 A의 부탁을 받아 그 명의만은 조카인 B 앞으로 단독등기 해주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의뢰인은 가족과 함께 쭉 B의 집에서 지내왔는데, 시간이 흘러 A가 사망하자 아들 B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의뢰인에게 퇴거뿐만 아니라 3600만 원가량의 과거 주거비용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의뢰인이 즉시 이사를 완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B는 민사소송을 제기하고는 법원에 ‘피고(=의뢰인) 때문에 집이 모두 망가졌다’고 주장하며 위 주거비용에 더하여 원상복구 비용으로 2000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견적서까지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10년 동안의 차임 상당 부당이득
원상복구 비용


여러 측면에서 검토를 해보았으나 25년 전 의뢰인이 매수대금을 나누어 부담하였다는 증거도 분명치 않았고, 설령 증명이 된다고 하더라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금원 반환이나 주택의 지분 이전을 요구할 수는 없었던 상황.

결국 원고 B의 주거비용 및 원상회복비용 청구를 방어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이미 사망한 A가 의뢰인에게 무상 거주를 약속하는 말을 했다는 증거 역시 있을 리 만무했고, 나아가 이는 A의 약속일 뿐 소유자로 등기되어 있는 원고 B의 약속이 아니었으므로, 의뢰인과 B 사이에 사용대차 약정이 체결되었다고 보기에는 애매한 부분도 있었다.

 

이에 사용대차 계약의 묵시적 성립을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던바, 현 시점에서 확보할 수 있는 구체적 증거와 정황을 최대한 제시한 이후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준비서면을 제출하였다.

① 피고(의뢰인)가 25년 동안 이 사건 부동산에서 가족들과 함께 평온, 공연하게 거주하여 온 점, ② 원고가 이에 대하여 그동안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아니하였던 점, ③ 이는 원고 역시 ‘피고가 부동산 매수대금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였고, 따라서 해당 지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음에도 무상으로 전체 소유권을 이전하여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인 점, ④ 원고 측은 내용증명을 통해 피고에게 ‘20**. **. **.까지 집을 비워 달라’고 요구하였던바, 적어도 위 날짜까지는 피고 가족의 거주를 허락한다는 뜻을 분명히 표현하였던 점을 종합하면,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원고와 피고 사이에 묵시적으로 사용대차 약정이 체결되었고, 피고는 원고의 묵시적 승낙하에 20**. **. **.까지 적법한 점유권원에 기초하여 이 사건 부동산을 점유하였다고 봄이 합당합니다.

 

이외에도 몇 가지 쟁점이 더 있었으나, 이후로는 기본적으로 사용대차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전제 위에서 재판이 진행되었고, 결국 의뢰인 가족이 급히 이사를 나오는 과정에서 집에 남겨두고 온 폐기물을 처리하는 비용 -단 50만 원- 만을 부담하도록 하는 화해권고결정이 확정되며 사건은 종료되었다.

 


다행히 이 사건은 순리대로 잘 해결되었지만, 불필요한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대주이든 차주이든 처음 사용대차 계약을 체결할 때부터 증빙자료를 분명하게 남겨둘 필요가 있다.

또 부동산 소유자의 입장이라면, 의도치 않았던 타인의 무단점유가 시간이 흘러 묵시적 사용대차로 인정되는 일이 없도록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발언이 향후 사용대차 여부를 판가름하는 일종의 법률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주의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위 사례에서처럼 ‘언제까지 집을 비워 달라’고 요구한 경우, 그 발언이 나오게 된 구체적인 배경에 따라 ‘적어도 해당 시점까지는 점유를 허락한 것’이라는 상대방의 반박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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